드디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할 시간이 되었다.
7시까지 공항에 와달라는 가이드의 엄명에 맞춰
공항버스를 예약하고 이동한다.
이른 시간이라 버스가 한적 할줄 알았는데 두어 정거장 가니 좌석이 꽉찬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이 당황해 한다.
미리 예약하길 잘했다.
2024년 11월 8일 - 16일 까지 7박 9일간의 튀르키예 여정
이스탄불행 발권도 마쳤다.
검색대에도 이른 아침임에도 승객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후에야 아침을 먹는다.
비행기는 이미 대기하고 있는것 같은데
처음 타보는 터키 항공사 비행기는 국내 항공사에서 잘 발생치 않는
연착이 많다고 하더니 역시나 25분 연착 출발을 알린다.
그사이 여행 선물을 기대 했던 와이프는 아주 짧은 시간에 눈여겨 봤던 신상 가방을
하나 챙기고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하고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튀르키에 스튜어디스의 안내와 붉은색 어메니티를 받으니
이제서야 여행이 실감난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중 식사가 두번나온다.
조금 짜다는 생각외에는 괜찮은 수준의 음식이 제공된다.
점심에 제공된 기내식
저녁에 제공된 기내식
구름위를 날던 비행기가 10시간 정도 지나니 느낌상 아제르바이잔 정도에서
커다란 산맥과 함께 눈에 덮힌 산의 모습이 보인다.
12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 바로 현지 버스로 이동하여
튀르키에 여행의 첫끼를 먹어본다.
괴프테와 함께 케밥이 추가로 나왔는데
배가 고팠음에도 빵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중간의 둥그런것은 가지볶음
첫 숙소 윈덤 그랜드 이스탄불 유럽
6시간의 시차로 인해 첫날 밤은 제대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튀르키예 터키로 익숙한 나라지만 국토는 거대하여
총 81개주로 구성되고 수도는 앙카라지만 인구 8000여만중
유럽과 아시아의 요충지 이스탄불에서만 2000만명이 넘게 거주하여 이스탄불이 세계 10대 도시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7박 9일의 여행동안 전부 볼수는 없고
이스탄불 - 삼순 - 아마시아 - 카파도키아 -콘야 - 안탈리아 - 파묵칼레 - 에페소 - 마지막 이스탄불로 거치는
중부와 다시 남부 그리고 서부 일부를 보는 코스다.
잠을 얼마 잔것도 아닌데 현지 새벽 5시 조식도 도시락으로 받고
다시 국내선을 타기위해 이스탄불 공항으로 왔다.
어제 긴 비행후 도착 당시 느꼈지만 이스탄불의 공항 규모는 인천공항을 능가할 정도의 큰 규모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허브공항의 역할을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번째 국내선 이동
공항의 규모만큼 검색대에서 터미널까지 이동도 긴 거리 였는데
이곳은 이미 공항에 들어설때부터 1차로 검색하고
다시 정식 2차 검색을 실시하여 테러에 민감하게 대비한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공항 내에도 익숙한 커피전문점이 있었으나 공항지역이라 그런지
아메리카 한잔의 가격이 6000원이 넘는다. 시내 가격의 배 이상이라고 가이드가 귀띰을 해준다.
터키 화폐로 환전을 하면서 10리라 지폐와 1리라 동전을 함께 찍어본다.
10리라에 새겨진 인물은 튀르키예 어디를 가든 만날수 있는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다.
또다시 여권을 꺼내고 발권을 마쳤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일출
여행 다니면서 일출을 비행기에서 본것도 처음인것 같다.
짧은 1시간 여의 비행에도 기내식이 제공된다.
요구르트와 치즈의 나라 답게 간식에도 필수로 포함된다.
이스탄불에서 삼순까지는 튀르키예의 북쪽 지역을 비행하게 되니
드넓은 바다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흑해
우리 바다 수역에서는 수많은 조업 선박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자주 목격되지는 않았다.
국내선 비행기도 작았지만 공항 역시 한적한 곳이었다.
공항 터미널도 지방의 버스 터미널 보다도 작은 규모
뭔가 삼성에서 꼭 지원을 해줘야만 할것 같은 삼순
우리의 이름과도 비슷해 친근감이 드는 도시다.
삼순은 현대 튀르키예가 있게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해방전쟁의 단초를 만들어낸 도시로 튀르키예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반디르마호는 아타튀르크가 삼선에 도착할때 탔던 배이다.
이배는 튀르키예의 독립투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독립운동을 기리는 동상과 깃발
선박내부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자취와 독립 전쟁사가 기록되고 전시되어있다.
삼순의 명소 아미소스 언덕에 올라왔다.
좌측의 무덤과 같은 정상에도 국기가 걸려 있다
원래 이곳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곳이었으나 최근 튀르키예 내 케이블카 사고이후
전국에 점검 명령이 떨어져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로는 바티공원과 아마존 빌리지 그리고 드넓은 흑해를 수평선 끝까지 볼수 있다.
언덕에서 내려와 사자 아슬란과 아마존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커다란 동상을 바라본다.
아마존 마을에는 아마존 여인왕국의 역사가 소개되어 전시되고
외부에 이곳을 존속시키기위한 역할의 남성들을 가두어둔 감옥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의 역사를 모티브로 조성된 공원이나 관리가 제대로되지 않아 실패작인것 같다.
빌리지 옆의 지붕에 조개 껍데기를 연상하는 모양을 한 식당에서 중식
현지에서 제대로 된 케밥과
피데를 먹어 보았다.
다시 2시간여 버스를 타고 아마시아로 이동
아마시아 도시를 전망할수 있는 카페에 먼저 들어가 휴식과 관광을 겸해본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앉으니 도시 전체를 보게된다.
도시 위치가 표고가 높은 지역인것 같다.
튀르키예 국민이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따끈한 홍차를 마셔본다.
아마시아 관광을 이야기 하기전에 우선 사과부터 얄려 보기로 한다.
크기 비교 처럼 국내에서는 볼수 없는 작은 사과가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길가의 과일가게에서 1kg에 약 50리라 주고 구입했는데
두고 두고 잘먹었고 다른곳에 가서도 마트에 들러 또 사먹게 된 사과
나중에 내려와 올려다본 성채의 모습
카페보다 더 높은곳에 위치해 있어 성채 입구에서도 이렇게 도시 전망이 멋지다.
역시나 성채 꼭대기에는 여지 없이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곳에서 본 도시의 모습은 또 다르게 보인다.
페르시아 시대 부터 오스만 시대까지 역사의 혼란속에서 소실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하여 그런지
관리가 좀더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시아의 오스만 제국 시대의 가옥과 예실으르막 강에 반영된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알착다리 아마시아에 유일하게 보존되어있는 로마시대 다리로 일명 사랑의 다리로 불리운다.
뒤의 바위산에 있는 석굴은 고대 폰투스 왕국의 수도가 현 아마시아에 만들어지면서
산의 경사면에 기념비적인 암석 무덤이 세워졌다고 한다.
둘째날의 숙소였던 초룸의 아니타 호텔
호텔 근처에 AHL Park Mall에서 먹거리를 사기 좋다.
언어 소통이 잘 안되 불편했지만 친절한 캐셔 덕에 무난히 지나갔다.
3일차 하루 일정중 가장 바쁜날로 기억된다.
호텔에서 조식후 버스로 5시간 걸려 카파도키아로 이동 버스에서 일출도 감상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볼일도 보고 지나며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
괴레메가 가까워지자 차창밖으로 드디어 상상의 계곡에 낙타 요정바위가 보인다.
경이로운 계곡의 각양각색의 바위를 보며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 계속 이어진다.
오후에 집중적으로 계곡 관람을 위해 먼저 투라산 와이너리에 방문
화이트, 레드 ,로즈 와인 시음
금강산도 식후경
중식을 위해 방문한 식당
암석을 파고 그밑에 지어진 특이한 시설의 식당이었는데
실제 내부 구조도 바위를 뚫고 만든 형태가 아주 색다르게 느껴진다.
테이블의 세팅과 구조도 석조형태로 멋지다.
게다가 종업원이 한국말로 설명하며 적당한 유모어와 함께 항아리를 깨뜨리는 퍼포먼스도 즐거웠다.
일명 항아리 케밥 이번 여행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으로 모든면에서 훌륭한 식당이다.
파샤바 계곡 입장료를 내고 길을 따라 입장해보니
왜 이곳을 스머프 마을이라고 하는지 단박에 알겠다.
버섯 모양을 똑 닮은 바위 인위적으로 만든게 아닌가 할 정도로 특이한 바위
바위 꼭대기 혹은 중간에 굴을 파 놓았는데 고대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면서 만든 굴이라고 한다.
바위 밑에는 여러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큰 공간도 있다.
높은곳으로 올라가 전체를 보니 주변지역과 확실히 차별화 되어있고
바로 앞에 하나의 몸통에 세개의 봉우리가있는
바위가 이곳의 대표적인 삼위일체 바위가 보인다.
이번여행중 3가지 옵션을 추가로 진행했는데 첫번째 옵션이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을 지프를 타고
돌아다니는 투어이다. 가격은 80유로
연식이 오래된 지프에 4명이 타고 투어를 진행한다.
오프로드 지형이라 길이 다소 험한곳도 있고 뷰가 좋은 장소에 도착하여
포토 타임을 갖는것으로 구성되어있어 단순하지만
워낙 전경이 좋아 즐거움이 많았다.
붉은색을 띄고 있어 장미계곡으로 불리우는 지역
선셋 포인트로 유명하다고 하나 낮에 봐도 멋지다.
연인들의계곡 파샤바에 있던 바위는 모양이 버섯을 닮았다고 하지만
이곳은 별도로 남근석 계곡 이라고 칭한다.
연인들이 많이 와있고 사랑의 나무도 보인다.
1시간 10분여의 투어가 끝나면 대미를 장식하는 샴페인 쑈가 펼쳐진다. 팁 필수
괴레메 야외 박물관
카파도키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버섯모양의 바위를 이용하여 집과 교회들이 모여있는곳
대부분 5-12세기 로마와 이슬람의 핍박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것으로
1년을 상징하는 365개의 동굴 교회가 있다고 한다.
종교의 힘이 얼마만큼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것인지를 알게 해준 시설
그러나 개방되어있는 30여개의 동굴교회는 내부 촬영이 불가해
동굴교회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는데 안내판을 보고 대략적인 대표 프레스코화를 구분할수 있다.
수많은 동굴교회중 빛이 잘들지 않아 암흑교회라고 불리는 카란륵 교회는 11세기 교회로
암굴교회중 가장 보존이 잘된 교회 내부에는 신약성서 장면들이 표현돼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별도 입장료를 내야 입장할수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버스 이동중 잠깐 들린 우츠히사르
이곳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이라고 하는데 바위산은 그자체로 성채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옛날 수도사들이 바위를 파서 벌집 형태의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7세기 후반 이슬람교의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거주하였고
11세기 무렵 수만의 인구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한지역에서 가는곳 마다 자연과 종교가 만들어낸 경이로운 하루가 지나고
특별한 경험을 할 3일차 숙소 칼세돈 케이브 스위트 동굴호텔에 도착했다.
일단 외관부터 눈길을 끌고 밤의 조명까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러나 동굴의 바위를 파내 인테리어를 하다보니 시설도 한계가 있고
환기면에서도 그다지 좋지 않다.
방의 컨디션 또한 각방의 상황이 달라 만족도 또한 복불복이다.
4일차 아침 조식도 못먹은채 새벽부터 호텔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버스가 오기만 기다린다.
오늘 두번째 옵션인 열기구를 타기 위해서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탈수가 없기에 그저 오늘 날씨가 열기구가 뜨기에 적당해 지기를 간절히 원하며
일단 열기구 업체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륙장으로 향한다.
오늘 열기구가 떠오르게 되길 신께 빌며
이륙장에 도착하여 기다리기를 40여분 드디어 열기구에 점화를 해댄다.
아마도 적지 않은 비용 310유로를 지불했지만
이것을 즐기기 위해 튀르키예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흥분지수가 점차 올라간다.
서서히 열기구가 떠 오른다.
32명이 4명씩 바구니에 나눠 타고 보니 열기구의 크기에 다시금 놀란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고 약간 흐리지만
공중으로 하나 둘씩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며 두려움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지상에서 보았던
카파도니아 괴레메 국립 역사공원 지역의 경치도 좋았지만
상공에서 바라본 이 지역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무수한 버섯바위는 물론이고
지프를 타고 돌았던 계곡의 길도 모두 보이고
지평선 너머 소금호수가 보인다.
발아래로 어제 보았던 야외 박물관도 한눈에 보인다.
일출은 진작 지났으나 다행히 이륙한지 20여분이 지나니 구름사이로 태양 빛이 조금 내 비친다.
잠시나마 열기구가 상공에 솟아 올라 날으는장면을 담아 본다.
서서히 열기구가 하강한다. 내려가는 지역이 사랑의 계곡 근처 인것 같다.
신기한것은 앞의 바위에 사람이 거주하는 흔적이 있다는것이 더 놀라웠다.
100여대가 넘는 열기구가 순차적으로 떠오르고 공중에 올라 장관을 연출하더니
내려 앉는곳은 조종사의 운항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지역에 내려 앉는다.
열기구의 무게로 인해 차량뒤에 달린 캐리어 위로
지상요원의 도움을 받아 바구니 채로 정확히 내려 앉는다.
1시간여의 비행이 무사히 끝났다.
모두가 행복한 비행을 감사하고 기분좋은 와인 파티로 마무리 이곳도 팁은 필수
모든 행사가 끝나자 열기구 업체에서 인증서 한장을 내어준다.
이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은 또 어디인가?
이곳도 기독교인을의 박해를 피해 대규모 지하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곳은 데란구유라고 하는곳이다.
지하도시에 교육기관 교회 와인저장소까지 있고 최대 3만명까지 수용가능하다니
지하도시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 규모다.
이곳은 환기와 물품을 오르내리는 통로로 이용된것 같다.
석굴을 파 지하도시를 꾸며 협소 할수 밖에 없지만
몇몇곳은 이렇게 여러명이 거처 할 수 있는 큰 공간도 있다.
좁은통로에서 허리를 굽혀 설명을 듣다보니 구조가 머리속에 그려 지지 않았는데
밖에 나와 안내도를 보니 딱 개미굴이 생각나는 그런 구조였다.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로 피신을 하더라도 환기가 어찌 될것이고
환기구가 노출되면 지하 도시가 발각될거 라고 생각했는데
지상에 이와 같이 우물로 위장된 환기구로 박해를 피했던것 같다.
중식을 하기 위해 들른 식당
이곳은 이스켄데르 케밥을 제공하였는데 다향한 케밥중 양고기 되네르 케밥에 빵과 요구르트를 곁들여 먹는다.
튀르키예 풍습중 신기한 풍습
모든 창문이 청결하게 잘 닦아져 있다. 튀르키예는 창문이 불결하면 복이 안들어온다는 풍습이 있어
집안의 창문은 이곳 여성들이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것이 생명이라고
고층의 유리창은 어떻게 청결을 유지하나 했더니 미닫이가 아니고 아래에서 위로 여는 여닫이다.
이곳은 콘야에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
메블라나 교단의 본산지로 내부는 촬영금지로 외관만 찍을수 밖에 없었다.
성당 주변에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방에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설명과 유적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메블라나 교의 창시자 메블라나 루우미의 제자 세이크 케리메딘의 관
회전하는 춤을 통해 자신을 버리고 신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춤추는 수도사가 수피즘 일파의 기원이 되었다는데
이중 눈길을 끈 묵주와 같이 생긴 이것이 무얼까?
흑단 혹은 참피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1498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는데
수도사가 빙글빙글도는 춤을 출때 그 횟수를 세기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회전을 몇번이나 한건지 그정도 회전하면 누군가와 교감을 할듯하다.
콘야에서 버스로 4시간 이동
4일차 내일의 여행을 위한 안탈리아의 숙소 크라운 플라자 호텔 도착
9시가 넘은 시간이었만
지중해 해변을 걷고 싶어 해변가로 나왔다.
튀르키예 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휴양도시중 한곳이지만
철지난 바닷가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래도 이곳의 정취를 느껴 보고자 바닷가 카페에 들러 튀르키예 맥주 에페스 필스너를 마셔본다.
100% MALT 다른곡물 없이 보리 맥아만을 써서 그런지
홉의 쌉쌀한 첫맛과 함께 상큼한 뒷맛이 느껴진다.
핸드폰 통역기를 꺼내 추천받은 튀르키예 감튀
우리가 늘먹던 감튀보다 조금 크게 썰었고 약간의 후추맛이 느껴져 느끼하지 않은 맛이 좋았다.
다음날 호텔의 조식을 먹기 위해 뷔페 식당에 갔는데 바로 앞이 수영장이고 그앞이 지중해다.
이곳이 뷰 맛집 호텔 이었다.
이곳 유명 휴양지 공원에도 역시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역동적으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지난달 영화제가 있었던것 같다.
뒷 배경에 안탈리아의 상징 이블리탑이 우뚝 서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
기원전 2세기 세운 130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도시를통치했던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것
과거 성벽 출입구중의 하나로 역할을 해 마차 바퀴의 흔적이 돌에 새겨져 있다.
현재는 구시가지로 드나드는 통로로 활용되어 진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장식 대리석의 아치라고는 상상이 불가하게 정교하다.
보수한 흔적은 있지만 현재도 성벽은 건재하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에서 카라알리올루 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골목 골목 아름다운집과 가게들이 즐비하다.
고색 창연한 골목길이 감성 돋게 하고
아름다운 꽃길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튀르키예는 개의 천국이다.
목줄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가 여기저기 무리지어 다니나
제지하거나 쫒아내는 사람은 없다.
그냥 자유롭게 사는 길거리 개
공원 한켠에도 들냥이들을 위한 고양이집이 설치 되어있었다.
안탈리아 유람선 관광을 위해 선착장에 도착했다.
영화에 나올것 같은 고풍스런 유람선의 돗대가 멋지다.
잔잔하고 드넓은 지중해 바다
두덴공원 폭포가 시원스레 물을 토해내고 있다.
절벽을 따라 아름다운 경치와 폭포의 모습을 감상해본다.
배경의 절벽 식당은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점심 식사가 예정된 식당이다.
뱃머리 쪽으로 나가 보니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든다.
망망대해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드는 전경
지중해 바다를 항해한다는 기분 참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좌측의 산아래로 어제 묵었던 호텔과 길게 이어진 해안선이 보인다.
배경의 산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높이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을 마치고 항구에 들어오며 보는 우리가 탄배와 동일한 형태의 유람선 현대적인 배가 아니라
알록달록 예쁜 모습의 유람선들이다.
내려올때는 시내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왔는데 올라갈때는 절벽위로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높은 지역으로 가니 안탈리아 항의 정겨운 모습이 모두 보인다.
오늘 점심 식사를 제공할 해안 절벽 식당
절벽위에 위치해 있어 지중해를 바라보며 식사할수 있는 멋진 곳
이번 여행중 케밥외 지중해식 해산물요리 생선구이
이식당은 특히 곁들여 나온 문어 요리가 더 맛있었다.
한가지 단점은 생선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식당 야외에서 음식을 먹는 자리까지 와서 놀다 간다는것
또 다른 유람선이 유유자적 지중해를 항해중이다.
안탈리아에서 다시 파묵칼레로 3시간 30여분을 달려가 도착한 이곳
입장료를 내고 들어 왔는데 첫인상은 뭔가 썰렁하다.
몇백미터를 걸어 들어가니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가 나를 맞이한다.
이곳은 하얀색이라 자칫 소금산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소금이 아니라 석회붕 지역이다.
자연이 빚어낸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곳
파묵칼레가 목화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곳때문이다.
에메랄드 빛 물이 아름답게 빛나는데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
물이 흘러내리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회의 파도 무늬가 정말 아름답다.
출입할 수 있는 지역에 맨발로 내려가 석회 지역도 밟아보고 온천수에 발도 담그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본다.
사진 몇장으로 담을수 없어 전체 지역을 담아봤다.
자연적으로 훌륭한 이곳에 함께 조성된 도시
성스러운 도시의 대명사 히메라 폴리스
이곳도시의 상징 수닭이 먼저 여행객을 맞는다.
파묵칼레 언더위에 세워진 이곳은 기원전 190년에 세워진 고대도시이고 로마시대에는 온천지로서
15만명이 넘는 대도시 였으나 지진등으로 모두 소멸되어진 상태
크기가 큰 도시라 카트를 타고 투어해 본다.
이곳은 북부에 위치해 있는 공동묘지 구역 1200여기의 무덤이 산재 해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프론티누스 문
양쪽 원통형 탑과 3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복원된 15000명 수용이 가능한 원형극장
현재 실제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 이기도 하다.
5일차 숙소 아뎀피라 테르말 & 스파호텔
파묵칼레의 온천호텔은 수영은 물론 온천욕까지 가능하다고 하여
국내에서 온천욕할때 수영모가 필요하다고 해서 새로 구입까지 했건만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온천은 즐겨보지도 못했다.
아침 일찍 파묵칼레를 떠나 에페소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린다.
호텔을 나온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 차창 밖으로 열기구가 떠 오른다.
카파도키아 보다 100유로 가격이 싼이유는 아마도 전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페소로 이동중 셀축에 있는 사도 요한의 교회를 잠시 들러본다.
입구에 있는 문이 박해의 문이다.
비잔틴시대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었는데 그이후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순교당한 원형경기장의
대리석을 부수어 이곳의 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도 대부분이 무너져 지붕은 모두 없어지고 바닥의 흔적과 기둥 벽체들만 일부 남아있다.
특히 이곳이 사도 요한의 교회라 불리우는 이유는 이곳은 사도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았던 곳이자
사도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또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곳이기 때문이다.
네개 지주 아래가 사도 요한의 무덤
이곳은 침례 혹은 세례를 행하였던 장소
관람을 끝내고 전경을 보던중 중간쯤 기둥하나가 덩그러니 보인다.
예전 이곳에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자리인데 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날이 좋으면 우측 저 너머로 에게해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시계가 좋지 않아 안보인다.
에페소 고대 그리스 식민 유적으로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요충지로 번성한 곳이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성기를 누린다.
작은 원형극장도 따로 있고
상업지구답게 의료 기관을 알리는 간판도 있다.
승리의 여신 나이키 조각상
하드리아누스 신전 에페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적
신전 전면의 4개의 기둥중 2개의 기둥을 잇는 아치는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로마의 유적지중 빼놓을수 없는 목욕탕을 보던중 보게된 화장실
목욕후 허드렛물을 변기 아래로 흘려보내 용변이 세척되게 썼다.
셀수스 도서관
유적지중 가장 훌륭한것중 하나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상당히 화려 했음을 알수 있다.
거리를 걷던중 길 바닥 석재에 발이 그려져 있어 의아 했는데
유곽으로 가는 길표지라고 한다.
대극장 모습이다.
2만5천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형 극장중의 하나
당시 연극 및 검투사 경기가 이루어 졌고 현재도 잘 보존 되어있다.
점심 식사를 위한 식당
피르졸라 가장맛있었던 양갈비 구이 케밥
양고기 구이여서 특이한 냄새를 걱정했는데 새끼 양의 고기로 요리하여 냄새가 적다.
점심후 버스를 1시간정도 타고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이즈미르 공항으로 왔다.
두번째 국내선 여행 검색대 두번
긴거리 걸어 게이트 도착
1시간 25분 비행끝에 이스탄불 공항 도착
성수기가 아니어서 여행 출발전 기상에 신경이 씌였는데 흐리기는 했지만
날씨는 좋았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니 여행 처음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일 이스탄불의 도로는 서울 만큼이나 체증이 심하다.
사람이 많이 산다는것을 몸소 체험후 호텔에 도착하니
입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름답다.
6일차 숙소 엘리트 월드 유럽 호텔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아침부터 버스로 이동후 여행중 처음으로 케이블카를 탄다.
저멀리 골든혼 브리지와 금각만이 내려다 보이는 뷰 맛집 카페로 올라왔다.
이곳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음미해본다.
현지인에게 커피는 뗄레야 뗄수 없는 음료 아니 음료라기 보다 우정과 신뢰를 상징한다.
커피를 마시고 잔에 남은 커피 가루의 흔적으로 누군가의 행운을 빌어주기도 한다.
이곳을 피에르 로티 언덕이라 불리는 이유는
피에르 로티와 애플타의 사랑이야기가 간직된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간판위의 제비집이 눈길을 잡는다.
카라쿄이 여객 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투어를 나간다.
갈라타 다리를 지나
멀리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올라가던중
선박에서 나눠준 시미트빵을 잘라 던져 주니 이곳 갈매기들이 연신 배를 따라오면 받아 먹는다.
여객선 터미널에는 수만톤급 크루즈 선박도 정박해 있고
유람선 관광후 보게될 돌마 바흐체 궁전도 지난다.
석유 시추를 위해 흑해쪽으로 예인되는 시추선도 처음 보았다.
공주의 성이라 불리우는 마이덴 타워
배는 멀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루스 대교를 보며 다시 항구로 돌아간다.
여객 터미널 근처라 그런지 바닷가 임에도 비린내가 나지 않아 의아했는데
도보로 이동중 고등어 케밥집이 있어 유심히 보던중 근처 수산물 가게에 싱싱한 수산물이 가득했다.
로마에 갔을때 스페인 세고비아에 갔을때도 보았던 수도교가
이곳에도 있다 유럽보다는 아시아 지역쪽에 가까운 이곳까지 수도교를 보며
로마시대 당시 세력이 어마어마 했음을 느낀다.
이곳을 발렌스 수도교라 부른다.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의 그랜드 바자르
비잔틴 시대 부터 무역의 중심지였고 이후 튀르키예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하고자 아케이드가 추가 되어
현재는 18개의 출입구와 4000여개의 상점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자르 중의 하나이다.
1시간여 동안 기념품이라도 몇개 살까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결국 사지 못하고
1번 게이트 쪽으로 나왔다.
대신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던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한 로쿰집에 들러 지인들 에게 줄 선물을 구입한다.
다양한 로쿰 제품이 럭셔리한 포장에 담겨 판매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특이하게 호텔내 위치한 루프탑 식당
튀르키예 음식만 먹다 오랫만에 스테이크를 먹어봤다.
이곳 루프탑의 전경이 멋지다 하여 올라가 보니 블루모스크와 소피아 성당이 모두 보인다.
오스만 시대 지어진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튀르키예 최대로
맞은 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위해 건축한 회교사원이다.
건물 지붕이 아닌 건물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
200여개의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시계탑은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건축은 오스만 술탄 압둘하미드 2세가 주문했고
1890년에서 1895년 사이에 궁정 건축가 사르키스 발얀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19세기 경 오스만 제국 31대 술탄 '압뒬메지트 1세'에 의해 지어진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삼은 서양식 대리석 건축물로,
오스만 제국 말기에는 술탄들이, 터키 공화국 시대에는 대통령이 머무는 관저로 사용되었다.
작은 만을 메우고 곳곳에 정원을 조성해 '가득 찬 정원(돌마바흐체, Dolmabahçe)'라 한다.
정원의 숫사자상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 '바다 위의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술탄이 배를 타기위해 드나든 정박장 문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궁전의 정문
설명을 들을수 있어 좋았으나 이곳도 내부 사진 촬영금지라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의 비용을 써서 만든 멋진 내부를 보여주지 못하는게 아쉽다.
저녁식사를 한 식당
식당옆에 스타벅스도 있었고
특이하게 거리에서 군밤 군 옥수수등을 팔고 있었는데 한국과 매우 흡사하여 놀랐다.
후식으로 먹었던 귤도 제주도 귤과 별 차이가 없다.
이래서 형제의 나라라고 하나 보다.
쉬쉬케밥
꼬치에 고기를 꿰고 숯불에 구워먹는 대중적인 케밥인데 제일 맛있었다.
이번 여행의 세번째 옵션 이스탄불 야간 투어를 떠난다.
탁심광장 끝에는 터키공화국 기념비가 있고
거기서부터 인기있는 이스티클랄 거리(독립 거리)라는 긴 보행자 거리가 시작되고
이 거리에는 노스타르기지 트램(nostalgic tram)이 왕복하여 다닌다.
우리는 먼저 트렘을 타고 내려가 거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어 선착장으로 가기위해 도보보다 튀넬을 이용했다.
튀넬은 지하로 지어진 강삭철도이다.
1875년 1월 17일에 개통되었으며 세계에서 런던지하철(1863년) 다음으로 오래된 지하철이다.
튀넬은 금각만의 북쪽 해안에 위치하며, 카라쿄이와 베이욜루의 구역을 연결하는 2개의 역이 있다.
해발 고도 가까이에서 오르막까지 약 573 미터로 매우 가팔라 마치 푸니쿨라 같이 보인다.
낮에 배를 탔던 곳 에서 다시 야간 유람선을 탄다.
낮에 보았던 블루 모스크와 갈라타 다리가 화려하게 변신했다.
돌마바흐체 궁전도 빛을 받아 화려함을 뽐낸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 대교도 빛으로 갈아 입고 멋진 자태를 뽐낸다.
마이덴 타워도 낮보다는 밤이 더 화려하다.
낮보다 밤이 확실히 화려하다
어둠이 빛을 가리니 빛을 발하는 지점은 더 화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7일차 마지막 숙소 쉐라톤 이스탄불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호텔 조식중 가장 괜찮았던점이 좋았다.
다음날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침
이곳에 오니 요쿠르트와 우유가 필수 음식이 된 기분
블루모스크 앞의 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히포드롬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로마 시대의 마차 경기장
이곳에는 3개의 큰 구조물이 있는데
그중하나 19세기 독일황제 비헬름 2세가 오스만의 술탄 압둘하이드 2세에게 선물한 게르만분수
상형문자가 새겨진 오벨리스크
이집트에 있을법한 석조물이라 생각했는데
4세기 비잔틴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카르나크 신전에서 이곳으로 가져왔다고한다.
오르메 스툰
콘스탄틴 7세가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움 높이 32m
외부는 청동이 입혀져 있었는데 13세기초 라틴군이 점령한후 청동을 떼어 동전을 주조했다고 한다.
청동으로 꼬아 올린 기둥이 플라타이아의 트라이포드
기원전 5세기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무찌르고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기둥으로
뱀 3마리가 꼬여서 올라가는 모양이다.
현재는 뱀 머리 3개가 모두 잘려 나갔고 그중하나가 이곳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아야 소피아
튀르키예의 수많은 유적지가 지진에 의해 무너졌음에도 1500년 동안 지키고있는 불가사의한 건물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후 모스크로 개조
내부는 기독교적인 그림과 작품들이 남아있으나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회랑에는 덧칠한 흔적도 보인다.
현재는 2층으로만 입장이 가능하여 1층에서 보는 비잔틴 건축물의 신비로움을 바라 볼수 없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아야 소피아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혼재되어있다.
가장 시선을 잡는것은 8개의 대형원판
당대 유명 서예가가 쓴것인데 알라신,모하메드, 이슬람 초기 4대 칼리프들의 이름등이 적혀 있다.
데이시스 모자이크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심판의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온 예수에게
사람들의 죄를 가볍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톱카프궁전
술탄들의 거주지였다.
엔젤의 문을 통과할때도 여지없이 검색을 실시한다.
70만평의 넓은 궁전 모두를 볼수 없고 한국어 가이드도 지원되지 않아
발길 닿는데로 길게 이어진 제2정원을 지나
행복의 문을 들어서니
무스타파 3세의 철제 갑옷
톱카프의 단검
큼직한 에메랄드 3알이 박힌 우아한 곡선형의 단검.
1746년 오스만 제국의 마흐무트1세가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에게 선물하기 위해 제작한 단검
스푼메이커의 다이아몬드
황실 보물고에 소장된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톱카프 궁전에 보관된 보물들 중 가장 귀중한 보물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세계에서 4번째로 거대한 다이아몬드
다시 못볼 크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인데 사진을 망쳐버렸다.
너무나도 화려한 보석과 금으로 장식된 수많은 물품중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아기 요람이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왕손은 태어날때부터 금수저를 넘어선
금요람에서 키워졌다.
무작정 걷다가 다른곳보다 경비가 삼엄해보여 들어간곳에
진짜 보물들이 있다.성지순례 필수 코스
이슬람의 성유물을 모아놓은 성유물 보관소
모세의 지팡이
사도요한의 팔과 두개골뼈
예언자 무함마드의 발자국등
보고도 믿기지 않는 성스러운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부엌궁전이 따로 지어져 있었는데 황궁 주방과 내부에 각종 도자기들이 전시되어있다.
하루 2만명이나 되는 식구를 식사를 위한 거대한 솥
황실에 걸맞는 화려한 도자기 항아리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유럽에서 발전된 도자기 식기류
이 그릇은 독일의 식기로 기억된다.
이곳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세계 5대 박물관중 하나다.
이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 외에도 이집트를 중심으로한 고대 동양박물관 튀르키예 도자기관등
세개의 박물관과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까지의 역사적 문화적 교차로였던 튀르키예의 문화재를 볼수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이집트 수호신 베스가 보인다.
고고학 박물관을 수호하기 위한것으로 보인다.
1869 박물관 설립연도
알렉산더 석관
이수스 전투를 그린 부조라고한다.
가장 좌측의 인물이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조각상
이것이 히포드럼에 있던 청동기둥 플라타이아의 트라이포드를
복원하기 위한 그림이다.
잘려나간 세개의 뱀머리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
아프로디시아스 유적지에 있던 프리즈
박물관의볼거리가 너무도 많았지만 이곳 역시 가이드가 지원되지 않아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와 아쉬웠다.
튀르키예 여행의 전반적인 느낌은 유적지보다 오히려 자연적인 풍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중심에 있고 교량 역할을 하여 문화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잦은 지진의 영향으로 인한
유적의 훼손 상태가 심해 아쉬움이 크다.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갈 시간
면세점에 들러 장미오일 몇병 사서 집안 여인들을 즐겁게 해줄일만 남았다.
올때 보다 갈때는 빠르게 9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후 인천의 어느 섬이 보인다.
이번여행의 여행 코스를 간략히 그려 본다.
다음에는 튀르키예 동부를 보기 위해 또 갈것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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