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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들 여행기

스페인 여행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 까지 총정리

by *로빈* 2017. 11. 28.

올해 장장 10일동안의 황금연휴 임에도 변변한 계획도 못세워

가까운곳만 몇군데  다녀오고

 추석연휴에도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하다

 해외여행을 계획한다.

 

11월4일~11일 6박 8일

 

3년전 서유럽을 다녀온터라

유럽중 어느곳을 갈까 고민하다.

오랫동안 알아온 세 부부 6명이 의기투합하여

여행사 패키지로 예약하고 스페인으로 간다.

인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면적은 5배나 더큰 나라

지중해를 마주보고 있어 날씨나 자연 환경이 좋은나라

 

예약을 마친시기가 9월 두달여만의 설레임을 안고 드디어 공항도착

2017년 11월4일 12시45분 마드리드행 직항 KAL 비행기로 인천공항 출발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두번의 기내식과 한번의 간식을 먹은후에야 장장 13시간40분 만에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긴 시간의 여정후 현지 시간이 오후 8시  도착후 바로 호텔 투숙후

 

시장기도 돌고 현지 도착한 기념 파티도 해야 겠기에

구글맵을 활용하여 근처 슈퍼마켓을 찾아보니 다행히 슈퍼가 있다.

9시30분 마감시간이라 시간이 촉박했지만 다행히 먹을거리를 샀다.

 

슈퍼에서 맥주와 치즈 하몬 자두등을 구매해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이 마켓은 아주 큰 쇼핑센터로 각종 식품 및 용품이 잘 구비되어있는 마켓이었다.

시내 근처 슈퍼마켓은 구멍가게 수준

 

핸드폰은 통신사에 따라 로밍을 해서 갈수도 있었지만

 

좀더 저렴하게 쓰기 위해 딸이 챙겨준 1G 짜리 현지에서 쓸수 있는

유심칩을 미리 구매해서 갔는데 일주일 쓰기에는 딱 좋았다.

 

 

11월 5일 첫 관광지는 세고비아 알카사르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 〈백설 공주〉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성으로

알카사르라는 말보다 ‘백설 공주의 성’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곳

 

정말 만화에서 봤던 백설공주가 살던 성이 맞다.

해발 1700미터의 고지에 요새처럼 만들어진 성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이 이곳에서 감금된채로 어린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이후 1474년 이사벨 여왕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보통은 세고비아 구시가지를 거쳐 이곳으로 오는데

우리는 저아래 보이는 뒤편 잔디밭에 주차후 걸어서 이성을 올라왔는데

주변에 강도 있고 걷기좋은길 구 시가지를 조금 본후 성을 감아도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

힘든 계단을 타고 이곳까지 올라왔다.

색다른 경험이다.

 

내부에 입장하니 어려서 부터 전투기술을 가르쳤다는 이야기와 함께

들어가자 마자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제일먼저 우리를 맞이하고

 

합스무르크 왕의 문장

 

 

왕이 앉았던 왕좌 그위에 새겨진

"탄토 몬타"

이사벨 여왕 과 남편 펠리페 2세는 동등하다는것

그만큼 이사벨 여왕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나타내는 문장

 

스페인은 지리적여건상

이슬람 문화권 과의 교류도 많았고 그만큼 충돌도 잦아던것 같다.

712년부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라

성자체가 이슬람 양식으로 되어있다.

모든사람의 눈을 그리지 않은 이사벨 여왕의 대관식 장면 그림이 보인다.

 

천정의 문양

 

그리 화려하지 않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광을 보고 표현한 모습이 잘 찍어졌다.

 

 

1600년에 바르톨로메 카르두초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

1862년 이곳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때도 소실되지 않은 성화라고한다.

 

소성당 성체 모습 펠리페 2세가 결혼식을 올린장소라고 한다.

 

 야곱의 군대가 다른족들의 머리를 쳐내는 섬뜩한 그림

 

성을 방어하는데 썼던 대포의 일종

 

다른 화기들도 미니어쳐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성탑이 이렇게 뾰족한 이유는 이곳이

고지대라 눈이 많이 내려 눈이 쌓이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세고비아 대성당

 

대성당 내부

 

 

일명 애져라고 하는 2주된 어린돼지 요리

꼬지니요 아사도르

나에겐 별로 감흥이 없는 맛

오히려 곁들여 나온 샹그리아가  최고의 맛을 선사함

 

식사후 조금 걸어간곳이

고대 로마의 유적 로마 수도교

이게 기원전 50년쯤에 지어진것이라고 하는데

어찌보면 빈약해 보이는 순수하게 돌을 짜맞춰지은 이 수도교가 2000여년을 버티고 있다는게

그저 놀라울 따름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더니 그옛날 로마의 위력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단초

나무틀을 먼저 만들어 돌을 쌓았다고 하는데 10년의 공사기간이 걸렸다고

말라리아등을 예방하기 위해 깨끗한 물을 끌어다 쓰려고 만든것인데

정작 수도관을 납으로 만들어 납중독으로 이어 졌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그저 단순하게 돌을 다듬어 쌓아놓은 구조물이지만

보는순간 수도교라고 느끼지 않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듯하다.


도시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오기 위해 축조된 이 다리

 길이 813미터에 128개의 2층 아치로 최고 높이는 30미터.

인근의 과달라마 산맥에서 가져온 화강암을 다듬어

석회성분이나 콘크리트성분이 전혀 포함되지 않고도

견고하고도 우아한 예술품을 빚어냈다.

1928년에 현대식 수도관을 설치해 아직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단다.

 

 

수도교를 사이로 시가지가 양분되어있다.

 

 

 

이번에 여행 같이 간 부부 일행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내부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료를 내야한다.

시간이 없어 외관만 관람했다.

나중에 이곳에 와서  엘 클레시코 한번 관람할 기회가 생길수 있을까?

 

프라도 미술관앞 작은성당

 

프라도 미술관 입구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와함께 세셰계적으로 유명한 전시관이다.

페르난도 7세가 1819년 개관했으며 회화, 조각 등 수천 점의 방대한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5000점의 회화와 2000점의 판화, 700점의 조각, 1000점의 주화와 메달,

장식물 2000점 등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회화의 거장인 벨라스케스는 궁중화가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특히 ‘피카소가 단순하게 그려내었던 그림으로도 유명한 '시녀들’은 꼭 봐야할 작품이다.

 

 

벨라스케스 작품

화가 국왕부부 공주 시녀 들이 보는 관점이 모두 다 들어있는 명화

 

피카소가 자신만의 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

 

프라도 미술관 입구

 

 

 

 

 

프라도 미술관은 그레코,벨라스케스,고야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작품을 전시 보유중이다.

그러나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교과서에서도 봤던

고야의 옷을입은 마하 ,옷을벗은 마하 두점이 동시 전시된것이었다.

유일하게 사진찍을수 있었던 정문 조각상 

 

마드리드로 이동하여 왕궁을 보려했으나

아쉽게 내부 행사로 왕궁 내부는 구경 못하고 외관만 보게 되었다.

전체 길이 131m의 신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은

유럽의 수많은 궁전중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한다.

 

이와중에 유명한 소매치기 일당을 세 번이나 조우하게 되고

여행 첫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가이드로 부터 소매 치기 조심이란 단어는

버스를 내려서 부터 호텔방 투숙하기까지 수백번은 더 들어야 했다.

 

솔광장으로 이동

마드리드의 상징 소귀나무와 곰 조각상  (Puerta del Sol)

 

 11월 6일 숙소 힐튼 마드리드 에어포트 호텔

이번 여행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숙소

 

중앙홀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객실이 둘러싼 형태

 

이번 여행중 가장 불만이었던 음식

여행의 백미는 볼거리 먹거리 잘자리 인데

맛나는 현지식도 많을텐데 별로였고 특식이라 준 한식은 더 불만족

다행히 호텔 조식은 보통 이정도 식단이나 이게 그나마 제일 맛있었다.

 

1085년 알폰소 6세 카스티야이레온 연합왕국의 수도가 되어

1560년 스페인 통일 왕국 펠리프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 옮길때까지 

스페인의 수도를 500년간 지켜온 곳이다.

앞으로는 타호강이 휘돌아 흐르고 뒤로는 북벽을 가지고 있어

해발 516미터의 자연적인 천혜의 요새가 되어 

누구도 함락하기가 쉽지 않았던 톨레도

 

 

중앙의 뾰족한 탑이 보이는 대성당 종탑과 우측 가장 높은곳에 사방형으로 보이는 왕궁 모습

 

유태인들이 사는 곳에는 길 바닥에 하얀타일에 파란색의 문양을 넣어

표시 했다고 한다.

 

산토토메교회에 들러

엘그레코의 작품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세계 3대 성화로 꼽히는 걸작이라고 한다.

성스테판과 성 어거스틴 두성인이 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친히 매장하였다는 전설을

그린 그림 그림안에 엘그레코의 자화상도 있고

혼이 승천하는 그림은 여인의 자궁을 형상화 했다는 그림이다.

그림은 4미터가 넘는 큰 벽화였으나 사진을 찍지 못하여

근처 매장에 있는 판화를 대신 찍었다.

 

톨레도 대성당 외부 전경

 

스페인에서는 보물에 별도로 호수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는데

있다면 국보 1호급에 해당된다는 보물 

우측의 보물실에 있는 성체현시대(Custodia)는 전체가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5,00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무게는 180kg

 

성당 천정 모습 베르사유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천상의 세계를 아름답게 표현한것 같다.

지오르 다노의 천장화 와  예수님께 붉은옷을 입혀 도드라 지게 보이게한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이란 명화

 

성가대석에 있는 성모마리아 와 아기예수

 

대성전 대제단 제단 병풍 놀랍도록 화려하다.

예수탄생 , 성모승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이 조각되어있다.

 

나르시소 토메의 작품으로, 대리석과 설화 석고로 제작한 제단 장식

윗편의 둥근 천정을 깎아 구멍을 내 자신이 조각한 인물상들이 태양 광선을 받아

영적인 빛으로 이루어진 후광 안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자아냈다

저 빨간 모자는 대주교나 주교등 이곳에 성인들이 묻혀 있다는 묘지 표시라 한다.

 

대성당 천정 모습

 

성 크리스토포루스  여행자와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성인 어깨에 올린분은 아기예수

 

 

 

시가지에서 성당과 왕궁쪽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런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10여회 정도 갈아 올라가야 된다.

이곳의 고도를 짐작할만했다. 역시 천혜의 요새 답다.

 

이른아침 마드리드 출발해 1시간여 달려 톨레도로

다시 3시간여를 달려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이곳 세비야로 내려왔다.

 

 

난생 처음 보는 플라멩코를 본토에서 저녁 정찬과 함께 우아하고 편하게 관람한다.

처음에는 혼자 나와 추더니

 

이후에는 단체로 나와서 추기도 하고

 

남녀가 혼성으로 나와 추기도 한다.

 

오페라같이 카르멘인지 세비야의 이발사인지 모르지만

스토리를 알고 보면 더욱 재미 있겠는데

중간중간 올레를 외치는 관중들의 추임새와 한막이 끝날때마다 터지는 박수소리가

공연장의 흥을 돋구웠다.

나중에 보니 흥에 겨워 중간에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경우가 있던데

이건 플라멩코 관람의 예는 아니라고 한다.

 

공연장면을 찍어 봤다.

짧지만 플라멩코의 공연을 감상해보시기를

 

 

 

 

11월 7일

세비야 호텔 투숙후 다음날 조찬을 마치고

 

아라곤왕국 문장을 보며 이곳에 입장을 한다.

 

세비야 스페인광장

스페인에는 요소요소에 스페인광장이 여러곳 있는데

이곳 세비야는 규모면에서 상당히 큰편인것 같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안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스페인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건물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건물 양쪽의 탑은 대성당에 있는 히랄다 탑을 본 따 만들었다.아치형 기둥과 높은 탑이 양쪽에 있는

반원형의 건물과 큰 분수대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광장 주변중 둥글게 물길이 이어져 있고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카누도 탄다.

규모가 커 전체의 모습을 한장에 담기에는 역부족

1800년대에 엑스포 박람회를 열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우리도 박람회 이후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까하는 과제가 남듯이

이곳은 주 관공서와 육군성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건물 아래층 반원을 따라 타일로 장식된 곳은

스페인의 58개 도시의 역사적 사건들을 각각 채색 타일로 장식 해 놓았다.

세비야 알카사르로 가는 길목의 조형물

마리아 루이사 공원 콜룸부스의 탑

 

온화한 지중해 기온이라 11월이지만 아직 그리 춥지는 않다.

늦가을이지만 주택가 베란다에는 분홍색의 꽃이 만발해 있다.

자세히 보니 현재 나의 모친께서 키우고 있는꽃이다

꽃이름은 모르지만 이꽃이 스페인이 원산지 임을 단박에 알수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대성당인 세비야 성당은

외관만으로도 웅장함을 느낄수 있었다.

 

대성당과 가장 가까이에 인접해 있는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을 통과

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의 혼합 형태의 궁전인 세비야 알카자르가 보인다.

우리는 단체로 미리 접수해 10여분만에 입장이 가능했으나

개인별로 오신분들은 약 300여미터의 길이로 늘어서 입장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스페인

알카사르의 알도 이슬람의 접두어

사냥의 안뜰 출입문

 

대사의방

 

 

세비야 알카사르(Sevilla Real Alcázar) 페드로 1세 궁전 내 대사의 방 천장

 

아가씨의 파티오(안뜰)

 

 

머큐리 연못

연못이 있는 벽의 아치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곳을 그로데스크 갤러리라 한다.

 

이슬람 양식의 벽체 장식과 천정

 

성댱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겉모습을 보면 성당이 아니라 모스크 같다.

 

 무리요'의 작품 성 안토니오의 환상

 

바닥 가운데 보호줄이 쳐져 있는 무덤이 콜룸부스의 아들묘

자식이 아비덕을 본게 아니라 아비가 자식덕을 보아 콜룸부스묘가 이곳에 오게된 점이 특이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남미에서 가져온 마호가니 나무로 만들어진

장식과 조각들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 동안 제작된 높이 27m, 폭 18m 크기의

화려한 중앙 제단 장식은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고딕양식의 목제재단으로  성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상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1492냔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로 인하여

신대륙 영토와 수많은 자원과 막대한 보물들을 손에 넣을수 있어

유럽의 열강들 사이에서 스페인 역사상 최대의 번성기를 맞을수 있었던

공로로 현재도 콜럼버스는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히랄다탑

1198년 이슬람 사원의 탑인 미나레트로 세워졌지만 세 번의 증축을 거치면서

높이 97m의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탑은 계단이 없고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이슬람 시대에는 미나레트를 오르기 위해 당나귀를 타고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탑 정상에 오르면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탑 꼭대기로 올라가기위해서는

두사람이 겨우 교행할수 있을만한 통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번호가 새겨져 있다. 1 2 3  몇번까지 올라가야 할까?

결국 34번이 마지막임을 올라가야만 알 수 있다.

 

97m의 높이중 70m지점 종탑이 있다.

360도 전부에 기계 장치와 커다란 종들이 매시간 울려댄다.

이 종탑층 위에 한층 더 전망대가 있고  최고 꼭대기에

엘히랄디요 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히랄디요는 바람개비라는 뜻으로 풍향계 역할을 했다한다.

 

 

 

히랄다탑에서 내려다본 세비야 거리

 

세비야 전경

 

고대 유적을 보는 듯한 도시

 

세비야에서 코르도바로 이동

수평선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쳐다보며 2시간여를 달린다.

 

라파엘 기념탑 꼭대기에 서있는 치유천사 라파엘은 코르도바의 수호성인이다.

 

메스키타사원의 입구

비밀의 문처럼 살며시 들여다 보니

 

오렌지정원이 보인다.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었던 곳

수로를 따라 발이 빠져 관광객들이 다쳐 현재는 철제로 막음공사를 해놨다. 

 

메스키타는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을 뜻한다.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곳’이란 의미로 시작된 말이다. 

예배 전 전 몸을 씻는 수반이 자리했던 정원

수반이 있던 중정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역사의 흔적으로 인해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양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물로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종교 건축물이다.

 

원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은 1000개가 넘었었는데 850개의 말굽 모양의 아치 기둥은 남기고 

성당을 세우면서 약 150여 개의 기둥은 사라졌다고 한다.

 

기둥의 높이도 일정하지 않고 각각의 번호와 만든이까지 기록해 놓을 정도로 현장 상황에

맞춰 일일이 높이를 맞춰고 기둥도 가만히 보면 약간 기울어져 있는것이 특징이다.

9~10세기 동안 크게 세 번 증축을 하면서

약 2만 5천 명의 신자들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완공되었다.

약간 경사진 부분이 증축을 해서 넓힌경계

 

8세기 후반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 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도시를 코르도바에 세우고자 당시 서고트족의 교회의 일부를 구입한 뒤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게 되었고, 이는 스페인 이슬람 사원의 중심이 되었다.

지하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교회 흔적

 

국토 회복 운동 후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가톨릭 성당을 사원 중앙에 만들었다.

 

정교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이슬람식의 문양은 전통적인 이슬람 사원의 양식을 따랐다.

 

사원에 있는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라브

우상을 만들지 않는 이슬람교의 특성으로 어떤 동물이나 성상을 만들지 않고

정교한 문양에 금으로 장식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미흐라브

 

 

톨레도 대성당의 쿠스토디아와 같은 작가가 만든 보물

규모아 정교함은 톨레도 성당이 훨씬 나은듯

 

산타마리아 성당 중앙 예배당과 성가대

 

1236년부터 기독교 교회로 사용되었고 1523년 사원의 건물 안 중앙에 성당이 세워졌다.

대주교도 아닌 주교에 의해 만들어진 성당

성당이 만들어진 이후 이곳을 방문했던 카를로스 1세 가

세상어디에서나 볼수있는것을 만들기 위해 위대한것을 파괴했다"는 말을 남긴 일화가 있는곳

 

중앙 천장의 수려한 문양

 

이슬람사원이었던때 정원을 둘러싸고 있던 아치형 출입문들도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려

그곳을 가족 기도실로 하나씩 별도로 구성해 놓았다.

 

사원에서 대성당으로 변모할때 마다 나온 목재 원판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모아 전시해 놨다.

 

안뜰에서 바라본 벨탑은 미나렛을 개조한것으로 올라가보면 시내 전부가 조망될것이다.

 

메스키따 종탑이 보이는 유대인 지구 후데리아

접고 구불구불한 골목 , 온통 흰색의 집들과 창문에 가지각색의 예쁜꽃과 화분들을 볼수 있다.

 

메스키따 종탑이 보이는 유대인 지구

 

꼬르도바에서 그라나다로 2시간 30분 버스로 이동후

 

알함브라 궁전 야경관람

멀리서 야경으로 궁의 형태만 보아서는 조명빛은 아름다워 보이나

구조가 조금 단순해 보인다.

익숙한 기타 연주에 익히 들어온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기대가 더욱  기대되는 밤이다.

그라나다 시내의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 동상

신대륙 발견을 위해 항해 지원을 얻어내는 장면 같다.

나이보다 어려보이신다는 한마디에 재정 지원을 해줬다는...... 믿거나 말거나

 

 

11월8일

 

알암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성벽이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에 둘러싸인 폐쇄적인 형태의 궁전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궁전 내의 아치와 돔, 기둥에는 무어인의 뛰어난 손재주로 만들어 낸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으로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으며

궁전 내부의 연못에 비치는 궁전의 모습도 매우 아름답다.

 

알암브라 성에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9세기에 로마 시대의 요새 위에 세워졌으며

13세기 때 견고한 성벽과 망루로 이루어진 요새로 정비하고 확장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의 알암브라는 문을 사이에 두고 요새인 알카사바와

왕족 및 주민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나뉘어 있었다.

알카사바에는 24개의 탑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 개의 탑 중 일부는 올라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알카사바 입구의 문 

입구 문위를 보면 이슬람문양위에 성모마리아 상을 새겨 놓았다.

영화에서 보면 성입구를 커다란 나무통으로 부수고 들어가면 바로 성내로 진입할수었는데

이곳은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길이 뚫린게 아니라 방어를 하기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야야 성안으로 들어 갈 수있다. 방어효과를 최대화 시킨것이다.

 

지하감옥

 

알카사바(Alcazaba)

내부에 쌓여있는 전투시 사용한 돌 폭탄

 

성벽에 이렇게 홈을 파놓아 돌을 올려 놓고 사다리등으로 올라오는 적을 공격했다.

 

요새의 성벽 안에는 병사들의 숙소, 대장장이의 방,저수조 등이 있었으며

그 흔적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알카사르 성벽에서 알바이신 지구를 배경으로 사진을찍는다.

안달루시아의 전통 건축과 무어인 특유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다.

이번 여행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중 하나 이다.

 

그라나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알암브라 성은 기독교와 이슬람 양식을 절묘하게 융합해 건축한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9세기에 이미 알함브라 언덕에 작은 성이 건축되었는데,

1238년 나스르 왕조가 그라나다에 자리를 잡은 뒤 성 안에 궁전이 건설되기 시작해

1333년 7대 왕인 유수프 1세 시대에 화려한 궁전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하얀색 집들이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 회교도인들이 거주하는 거주지이다.

어제 밤에 궁전 야경을 봤던 성니콜라스 전망대가 뒤로 보인다.

 

카를로스 5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 왕국의 공식적인 제1대 국왕이며,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업적을 쌓은 황제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카를로스 5세는 왕비인 이사벨과 신혼여행을 위해 그라나다를 찾았다가

알암브라 성을 보고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궁전을 건축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해 지어졌으며,

정교하고 복잡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30m 길이의 정원을 2층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단순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궁전 테두리에 그려진 벽화

전쟁의 모습

 

아기 천사가 날아 다니는 평화의 모습

 

궁전내부의 원형경기장

가운데 공심점에서 소리를 내면 공명현상에 의해 주변 어디서나 소리가 잘들린다.

1층기둥은 도리아식이고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건설한 나스르 왕조

물,대기 ,식물을 모티브로 꾸민 아라야네스의 정원

 

 

 

대사의 방(Salón de Embajadores)

이슬람 왕궁이 함락된 1492년  800년간 지배하던 이슬람 왕국의 종지부를 찍은 장소

모든 창은 나무 투각으로 만들어져 있고

술탄은 사신을 맞을때 빛을 등지고 맞이 했다고 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달린 천체를 보는 느낌

알라신의 상징을 머리위 천정에 새겨 자연스럽게 사신이 경배하도록 해놓았다.

 

코마레스(Comares) - 아라야네스의 정원

연못에 비친코마레스 탑45m 의 모습이 아름다운 정원

그안에 대사의 방이 있다.

 

물의 정원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건축물과 반영이 가장 조화를 이루었던 정원

 

 

사자의 정원(Patio de Los Leones)

원래는 매시간마다 12마리 사자의 입에서 물줄기가 나왔다는데 지금은 그 기능이 없고

우상을 만들지 않는 이슬람교는 동물등의 형상을 장식하지 않는데

유대인들이 선물로 들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Sala de las Abencerrajes) 

벽면의 문양과 아치의 장식이 정교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수한 종유석이 달려있는 것 같은 천장의 복잡한 장식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한다.

종유석을 표현한 양식을 모카라베 (Mocarabe)라한다.

 

이방은 슬픈 사연이 있다.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이가 왕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된 왕이 이 가문의 남자 36명을 연회를 베푼다고 불러들여

이 방에서 한꺼번에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이일로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거의 멸문 당해버렸고

이날 이들이 흘렸던 피는 사자의 안뜰까지 흘러들었다고 한다.

 

 

 

두자매의 방 - 방의 이름 기원이 바닥에 놓인 대리석이 양쪽에 놓여 그렇다는 허무한 내용 

 

모카라베 양식의 또 다른 절정을 보여주는 두 자매의 방

여기는 왕비가 머무는 곳이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 보이는 큰 창문으로

건너편 아벤세라헤스 방의 제2왕비들의 생활을 봤을것 같다.

아벤세라헤스 방의  천장과 느낌이 아주 비슷해보이나.

천장의 기하학적 문양이 남아있어 보이고 원형형태로 되어 있어

안정감도 느껴지는것이 훨씬 좋아 보인다.

 

두 자매방의 한쪽에는 3면이 창으로 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린다라하 중정을 내려다 볼 수있어

바깥 구경을 할수 있도록 해놓았다.

라이온궁은 왕의 여자들이 기거했던 장소이기에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움이 곳곳에 묻어있는곳이었다 .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장소 

 

설명을 듣고 나가려는 찰라 이방의 비밀을 알아챘다.

들어가지 못하는 방이라 손을 들이 밀어 찍은 방의 천정

종유석 아치 위로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천정

 

창밖으로 보이는 물탱크 같이 생긴 이것은 왕족의 목욕탕이라고

유리창처럼 생긴 둥근창은 환기를 위해 들어올려 열수 있다.

 

황제의 방  

나스리 왕조의 왕이 아닌 카를로스 5세가 신혼여행을 와서 묵었다는 방

이곳이 어떤 방임을 표시하는 문장 다른것에 비해 조급히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알암브라 성 인근에 위치한 헤네랄리페는 ‘건축가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14세기 초에 이슬람 군주들이 여름 궁전으로 삼기 위해 건축했던 곳이다.

 

헤네랄리훼 에서 나자렛궁을 배경으로

 

헤네랄리페에는 크게 2개의 정원이 있는데, 그중에서 페르시아 양식으로 지어진

아세키아의 정원은 긴 연못 주변에 분수를 만들고

다양한 꽃을 심어 놓아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술탄의정원 

고사목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잘 크는 나무 불륜때문에 고사한 이야기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이동중

 

 

광활한 평야에 온통 올리브 나무

 

올리브 최대 생산국 답게 온통 올리브 천지 11월부터 2월까지 수확한다는 올리브

푸른것 까만것이 있는데 용도에 따라 따는 시기가 차이가 난다고 한다.

 

론다의 수도원

 

투우의 창시자 프란시스코 로메로에 의해

붉은색 천(케이프)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투우가 시작됐고,

그의 손자였던 페드로 로메로는 투우사로 지내는 동안

약 6,000마리의 황소를 단 한 번의 부상도 없이 쓰러뜨렸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두사람의 동상이 투우장 앞에 서있다.

 

1785년에 완공된 투우장으로 세비야 투우장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지금도 가끔 투우 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경기 나가기전 소의 상태와 투우사가 상대소를 고르는 장소

 

바로크 양식으로  최대 6,000명 수용 규모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투우장

1984년에는 내부에 투우 박물관도 만들어졌다

 

투우장 근처에  있는 알라메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우측 끝편에 있는 집이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이고

그앞의 길이 헤밍웨이의 산책로 였다고 한다.

 

알라메라 전망대

헤밍웨이 산책로에서 보면 전망대가 저렇게 앞으로 툭 튀어나온것을 알수있다.

미리 알았다면 오금 저릴듯

 

사진이 작아 보이지 않지만 절벽 중간사이로 길이 나있다.

헤밍웨이 산채로를 따라 내려 오면 이길을 따라 누에보 다리 아래로 가야

다리 다운 멋진 뷰를 볼 수있었다.

시간에 쫒겨 내려가 보지못한것이 안타깝다.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 주는 다리

 협곡 아래 과달레빈강이 흘러 옛날부터 두 지역의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의 다리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4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1793년 완성

 협곡이 깊어 마치 작은 그랜드 캐넌을 보는듯한 착각도 든다.

 

외국인이 있어야 외국 같다.

결국은 시간이 없어 협곡 아래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다리 아래에 있는 카페로 내려와 경치 감상하며 커피한잔하고 나왔다.

 

11월9일

 

숙소에서 말라가 공항으로 이동

 

9시30분 말라가 공항 출발

 

항구와 지중해가 보이더니

 

11시10분 바르셀로나 도착

공항의 규모나 시설이 마드리드하고 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중에 출국할때 이곳에서 면세품을 사려했으나

이곳의 상점은 면세점이 아니라는

결국 다시 나가 텍스 리펀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시간되면 시내에서 상품 사시고 텍스 리펀 처리 다하고  검색통과 하시길 권유한다.

그렇다! 세금 환급을 그리 쉽게 해줄리가 있나?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

 

 

바르셀로나 (Barcelona)

 

스페인 제2의 도시 이며 피카소 가우디의 성지
프랑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지중해에 면한 스페인의 주요항구이며 상업 중심지
독특한 특성, 문화사업,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수도보다도 인기있는 관광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분수쇼가 펼쳐진다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광장

토레스 베네시아네스 기념비

 

 

몬주익 언덕

92년 마라톤 우승자인 황영조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

한국인들이 너무 사랑해 앞의 잔디는 모두 없어졌다.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경기장 옆에는 일본인이 설계 했다는 송신탑이 서있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본 하얀술병이라는 나무

배가 양쪽으로 부른게 바오밥나무하고도 비슷하게 생긴듯

 

람블라스 거리(La Rambla)

다양한 종류의 초상화를 그려 주는 거리의 화가들이 많이 눈에 띈다.

람블라스 거리에서는 거리 자체를 즐기며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좋을것 같다.

 

바르셀로나는 독립을 원하고 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서 극우파였던 프랑코 총통이 승리를 하고

37년간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정치와 행정에 있어 막강한 힘을 가졌던 카스티야와

지중해 무역을 통해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카탈루냐가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코 총통이 카스티야에 정착하면서 카스티야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의 사용을 금지시켰고,

자치국 깃발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자치권이 프랑코 총통에게 넘어가면서 카탈루냐의 세금까지 고스란히 카스티야로 넘어가고

카탈루냐 지방은 지독한 탄압과 불평등을 겪게 됐다.

 

노랑색 바탕에 4개의 붉은색 줄이 그어져 있는 카탈루냐의 깃발은

아라곤 왕궁의 문장으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1932년부터이다.

카탈루냐의 마지막 왕이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입었던 옷이 노란색이었고,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옷에 줄을 그었던 것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깃발에 별이 그려져 있는 것은

카탈루냐의 독립을 바라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별로 표현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이들의 행동 과연 독립이 될것인지 궁금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 바로 앞에 유명한 콜럼버스의 탑


 꼭대기 동상이 콜럼버스다. 아메리카를 향해 손을 뻗고있는모습.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바르셀로나 항에 정박을 하고

이사벨 여왕을만나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1888년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한 세계 엑스포를 기념하기위해 세운 동상

 

구엘 저택

가우디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원자였던 구엘의 저택

 구엘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자리에 지어진 가우디의 첫 번째 대작

외관은 가우디가 잘 다뤘던 철로 만든 출입구가 인상적인데,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가우디 건축의 특징은

마지막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 이어지게 된다.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입구 중에서 하나는 지하 마구간으로 이어지는 입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들어가는 현관이다.

1층(우리나라 2층)부터 천장까지 뚫려 있는 홀의 위쪽은

환기구와 채광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빛이 들어올 때면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본래 이름의 뜻은 성스러운 가족에게 봉헌된 속죄의 교회 란다.

오후에 갔더니 역광이라 사진찍기가 어렵다.

예수탄생 파사드 쪽은 오전에 가야 사진이 잘 나올것 같다.

성가족 성당의

공사가 시작된 날이 1882년 3월 19일

이후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1926년 전차에 치이는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질 계획인데, 현재까지는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수난의 파사드
느낌이 다른이유는 조각가가  수비락스 이기때문이다.

1990년 완성되었다. 

가운데 십자가를 메고있는 예수와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예수의 얼굴에 묻은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는데  수건에 예수 얼굴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맨 왼쪽에 있는 혼자 서있는 사람은 가우디 

수바락스가  조각해서 넣었다고 한다.

 

사그라다파밀리아의 천개의 파이프 오르간

 

4개의 기둥은 4대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저자를 의미

 

종탑은 걸어서 오르거나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풍경도 인상적이다

 

예수탄생문쪽은 희망의 파란 스테인드 글라스로

 

예수수난은 붉은색으로 수난을 나타내었다.

 

자연 채광만으로 도 이렇게 불을 켜놓은것 처럼 실내가 밝게 유지되고 있다.

 

천장만 보아도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중간 기둥에는 돌기둥을 속이 빈형태로 만들어 조명장치를 그곳에 달아 놓았다.

 

뒷편에 전시된 기도문은 50개국의 언어로 작성되었다는데

우리 한글이 있다. 한번 찾아 보시길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예수 탄생’의 파사드 출입문 문양

자연의 사물을 사용하는

가우디 문양의 특징처럼 나뭇잎과 꽃 곤충등이 양각되어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다

옥수수콘같은 모양의 탄생의 파사드

사이프러스 나무가 가운데 놓여있다. 십자가도 이나무로 만들었다고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지금도 여전히 공사중
원래는 2026년 인가 완성된다고하나 아직도 미완성이고

착공된 지 13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근처 기념품점에서 완성된 성당의 외관 모습을 찍어 봤다

 

기존 유럽의 그어떤 성당과도 차별화 되는 훌륭한 건축물임이 틀림없다.

건축가로서 튼튼한 건축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수많은 컨셉을 건축물에 부여하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일생을 바쳐 일했다는것은 신에 대한 경외감을 떠나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람이 우선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 주택 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야자수를 닮은 돌기둥에도 곡선미가 담겨 있다.

뭐든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었다는것이 눈에 보인다.

 

 밝은 햇살아래 에서 보이는 이곳은

더욱더 사실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가우디가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았던 집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이 되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품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공원은 사유지가 아니지만

사진 정상부의 집은 아직도 개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세계적인 공원을 주변에 둔 집이라면 나도 매매 하지 않을것 같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 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광객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사진은 정말 외국에서 찍은것 같다 . 그런데 옆의 외국인 너무 멋짐

위의 타일 공장 밑으로는 시장을 쓰이는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리스, 로마 신전에 관심을 가졌던 구엘의 요청으로

가우디는 신전 모양의 건물을 지었는데 86개의 견고한 도리아식 기둥들이

광장을 받치는 디자인으로 설계한 것이다.

천장에도 깨진 타일 조각과 버려진 술병 등을 재활용하여 장식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

 

마트와 배경사이에 이렇게 타일로 알록다록하게 생긴 도마뱀 분수가

있었는데 엄청난 인파로 제대로 찍지 못해 기념품 샾에서 찍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경비실

 

세상에서 제일멋진 관리실

 

 

시장 위의 공원에도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용이나 파도를 연상시키는

벤치를 마련해 놨지만 이곳 마켓 아래에도

타일로 구성한 문양이 여타 예술 작품 못지 않다.

저녁식사를 위해 온

포트벨항구 맞은편 세계무역센터와 바다에 떠서 하늘을 바라보는

풍선 조형물 별을 보는남자 

 

물결무늬의 갑판위로 석양이 진다. 그 끝에 낮에 보았던 콜럼버스의 상이 보인다.

옆에 보이는 높은 현대식 빌딩은 바르셀로나의 자랑이 아니라 창피함이라고

현지인들은 느낀다고한다.

문화와 유산이 뭔지를 아는 선진국민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러본 마레매그넘 쇼핑몰

여행중 처음본 쇼핑몰인데 규모에 비해 살만한것은 별로 없었다.

 

11월 10일

 

마지막 여행일정 조식을 하고 버스에 오른다.

 

 

마지막날 첫번째 방문지는

바로 바로셀로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으로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너무도 조용해 보이는 미술관 입구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피카소가 어린아이의 감성으로 단순하게 그려내었던 "시녀들’

 

피카소의 그림은 이런 그림이 아니라

좀더 추상적인 그림이 많았던 터라 그의 그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곳은 그의 유년시절과 소년시절 ,청년시절의 스케치나 낙서 습장등을 다수

볼수 있었는데 그가 태어난 곳으 말리가 였으나 어린시절부터 피카소의 재능을 알게된

아버지를 따라 이미 14세때 바르셀로나에 유학와서 그곳 미술학교에서가르칠 수준이 넘어섰고

19세때 그림공부를 위해 마드리드 ,파리등으로 다시 유학을 갔고

23세때인 1904년 부터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4세 15세 정도에 아버지 담배갑에 그렸다는 그림은 소년이 남긴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그린 그림이었다.

아는만큼 보인다.

 

 

30분간의 속사포같은 안내를 받고 기념품점 들러 내생애 처음 그림 몇장 샀다.

 

1888년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한 세계 엑스포를 열었던 장소

우리보다 적어도 100여년 전에 엑스포를 열어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했었다. 

 

카사 밀라(라 페드레라, Casa Milà, La Pedrera)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팬이었던 페드로 밀라 이캄프스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의뢰한 연립 주택으로, ‘카사 밀라’라는 이름보다

‘라 페드 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06년에 설계해 1910년에 완공했다

거대한 돌덩이처럼 생긴 건물의 외관에서 가우디가 추구하는

선과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 한눈에 느껴진다.

바다의 물결을 연상하게 하는 곡선의 외관과 미역 줄기를 닮은 철제 발코니는

주변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가 되었다.

 

출입문의 철문문양도 마치 곤충의 날개에서 따온 문양이다.

 

옥상을 구경하러 먼저 올라간다하여

계단을 타고 걸어가나 했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건물에 넣은 초기 바르셀로나 건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

지붕 아래의 공간을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의 다락으로 만든 최초의 바르셀로나 건물이라고 한다.

 

옥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중세 병사와 모습의 굴뚝이 인상적이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특별함이 느껴진다.

 

타일로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환기구

 

기기묘묘 각양각색의 마치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모양을 가진 옥상 모습

 

옥상의 구조물도 모두 자연친화적인 디자인이고 곡선을 십분 활용한 모양

콘 아이스크림 윗모습을 닮았다.

 

 

옥상을 돌다보면 바르셀로나 시가지가 자연스레 보이고

가까운곳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잘 보인다.

 

옥상에서 바라본 환기창 그안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안에서 본 바깥 풍경이다.

이곳 공간은 당시에는 빨래터로 쓰였다고 한다.

 

옥상의 아치형 구조물 사이로 성 대가족 성당이 보인다.

가우디가 성당이 보이도록 의도해서 만든 아치라고 한다. 

 

카사 밀라 옥상의 굴뚝

마치 투구를 쓴 로마 군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모양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카사 밀라

구불거리는 지붕 선과 파티오가 인상적이다.

 

 

옥상에서 꼭대기 층으로 내려가니 

가우디의 작품 평면도를 전시하고 슬라이드 비디오 등을 상영하는

에스파이 가우디 박물관(Espai Gaudi)이 있다.

 

건물 층이 뼈대를 이루고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동물의 갈비뼈가 연상된다.

 

공중에 이런 금속 체인이 매달려져 있어 건물 장식품인가 했더니

 

그아래 거울을 부착해 놓고 여기에 비친 상을 보고건물의 무게중심을 잡아 구조를 만들었다

일명 무게추

건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구조를 맞춰야 했는데 현재 처럼 장비가 없던 시기

이렇게 모형을 먼저 만들고 실제 건물을 만들면

정말 오차 없이 튼튼한 건물을 만들었을것 같다.

역발상이 아주 재미 있었다.

 

무게추를 응용해 이렇게 건물의 중심을 맞춰보고 그에따라

구조물을 세웠을것 같다.

이렇게 보니 무게추가 더욱 확실하게 잘보인다.

구조적으로 최대한 안정감있게 만들려고 한 아이디어 였음이 나타난다.

 

자연물에서 조화로움을 찾는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는 자료

어느날 우연히 잡은 나방의 날개 문양을 보며

오히려 나비보다 나방의 문양이 밤에 다니는 동물이라

빛을 받으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많다는것을 보며

의류나 섬유 디자인하는 친구들이 이 문양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도 이미 자연 친화적인 생각을 가져 봤으니 천재?

 

아까 보았던 1층의 뼈대는 이런 동물의 뼈와 흡사하다.

 

동물의 갈비뼈를 닮은 천장 모습

 

사람을 수만번 앉혀 가면 만들었다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의자

 

문앞의 창과 손잡이도 자연친화적이고 인체 공학적으로 만들었다.

 

아파트내 아이들 방에 있던 미니어쳐들 아마 소꿉장난용이었을 듯

 

탕비실 재봉질하고 다림질하던 그모습 그대로

 

100년전의 조명

 

카사밀라 내부 창틀 모습

 

시녀의 방

 

100여년전에 이미 압력 밥솥이 존재

 

수도는 물론 수도꼭지도 현재와 별 다를바 없다.

 

당대의 부잣집들이었으므로 취미로 승마 사냥 골프

자전거까지 다양하게 즐긴듯

 

현재도 유럽에서쓰는 비데가 그때도 있었나봄

 

침실

 

서재

 

주방식탁

 

부부침실

 

응접실과 축음기

 

벌집모양의 문 창 안에서는 밖이 잘보이나 밖에서는 안이 잘 안보인다고

 

마지막 일정 몬세라트

높이 1200M의 산이 톱니처럼 6km에 걸쳐 기암 괴석으로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산타마리아 광장 한쪽 벽면에 위치한 미술관 옆에

성 가족 성당 서쪽 파사드인 ‘예술의 수난’을 설계한

수비락스에 의해 조각된 ‘산타 조지’의 조각상이 있다.

얼굴의 음각을 조각해 어느 방향에서 보던 눈동자와 마주치게 된다.

 

이건물은 현재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고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

 

환영(잎이 손바닥같이 생긴 종려나무), 영혼(사이프러스),

평화(올리브), 영광(월계수)을 상징하고 있다는 나무들

 

Montserrat는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 대성당 정면의 파사드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카 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성모상으로 들어가는입구에는

한국어와 일어로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중국어도 추가될듯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성모상은 특이하게도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전해지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다.

 

몬세라트 수도원 바실리카 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검은 성모상은

유리로 보호되고 있지만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공은 오픈되어 있어

이곳을 만지고 기도하거나 소원을 비는 관광객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나도 한참을 기다린후 사진만 찍다 이곳까지 와서 성모상을 봐야겠기에 다시 줄을 서서

치유와 가족의 평안을 빌었다. 신자들이야 당연히  성모상의 오른쪽 손 볼과 아래 솔방울을

만지며 감동스러웠겠지만 종교가 없는 나도 숙연함과 성스러움을 느끼며 기도했다.

 

성당을 나오며 보게된 촛불들

흡사 우리나라 사찰에서 보는 장면과 흡사하고 느낀다.

천주교는 다른곳에 포교를 할때 그곳의 토속신앙과도 자연스레 접목을 한다는

말을 접한적이 있는데 어떤게 원래 것인지 아니면 둘다 상통하는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몬세라트에 가는방법은  버스나 승용차로 올라가기도 하고

 

워낙 지대가 높고 급경사 지역이라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보던

레일 가운데 체인을 걸어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타거나

우측 분홍색 건물까지 올라오는 푸니쿨라라는 케이블카를 타도 된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산악열차로 올라온후

 

 

산악열차 정거장 부터 산정까지는 다시 또다른 산악열차를 타고 

 

수도원에서 약 250m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산호세역까지 타고 쉽게 오를 수도 있고

등산로를 따라 3km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

 

절벽위 끝짜락에 커다란 십자가가 육안으로 관측되고 그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저멀리 산봉우리 아래 산타 코바 수도원까지는 도보로만 20분정도 걸어가야 한단다.

 휼쩍지난 일주일

아쉬움을 뒤로한채현지 시간 11월10일 오후 8시10분 바르셀로나 공항 이륙

 

12시간여의 비행끝에 인천공항 11일 오후 5시경 무사히 귀환

 

 

광활한 대지와 끝없는 지평선을 가진 나라

도토리 나무와 올리브 밀 만으로도 먹고 살수 있는나라

정열의 플라멩코와 투우의 나라

유럽의 남서쪽 끝자락에 있어 대륙과 해양을 마음대로 이었던 나라

그리스 문명의 기원보다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모스크 문화를  더 먼저 받았던 나라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으로 인하여 해양제국을 건설한 나라

 

가장 존경스러운건

한사람의 힘으로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수만명의 먹거리를 만들어 준 가우디가 존재하는 나라이다.

 

가서 보고 느낀것과 잠깐의 지식을 찾아 기행문으로 블로그에 쓴

이글도 짬짬이 시간내 만들었지만 보름정도 걸렸다.

이것도 나름대로 끈기가 있다면 있는것인데 일생을 바쳐 자신의 소신과 역량을 한곳에

집중한 가우디와 결국 후대에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것을 보러 나를 포함하여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는것을 보면

가우디야 말로 위대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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