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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낚시/2023년

2306 - 상흔 (傷痕)

by *로빈* 2023. 9. 11.

배롱나무 꽃이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는 계절이 될동안

연꽃 마저 그 아름다움을 모두 보이고 사그라 질 동안까지

나는 북한강을 바라보기만 할 뿐 낚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유는 88년만에 장마가 아니라 열대성 우기라는 올해 기상 상황에

연이어  찾아온 장시간의 무더위로 내 의지가 아닌

자연의 변화로 인하여 반 강제성 출조를 못했다.

6월에 처음이자 마지막 출조를  남한강에 온후

 3개월 만에 남한강으로  출조를 떠난다. 아쉬움만큼이나 이른 아침 서둘러 후곡으로 향한다.

수천 톤이 넘는 방류를 남한강이 잘 견디었을지도 궁금하여 내려갈 길을 살펴보니 지형이 많이 바뀌었으나

그동안 꾼들이 제법 드나들었는지 길은 조금 내어져 있다.

마침 방류량도 100톤 초반 낚시하기는 좋은 여건 기온도 수온이 차서 그런지 덥지도 않다.

물색 또한 생각보다 맑다.  기대감이 증폭되는 시간이다.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아 본다.

서서히 동녘하늘에서 여명이 트인다.

여울 바깥쪽을 바라보니 그제야 많은 방류에 상처를 입은 흔적들이 보인다.

물가의 버드나무들이 모두 하류 쪽으로 넘어져 있다.

수십 년을 버티어온 녀석들이라 아마 시간이 지나면 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와중에 미루나무는 뿌리를 잘 내렸는지 꼿꼿하게 서있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출조 하지 않았던 베가는 아직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해 낸다.

물안개가 가시지도 않은 아침 일찍 튼실한 녀석을 낚아 낸다.

꾼들의 마음은 똑같다. 이미 여울에는 8명의 조사로 북적거린다.

한 시간여를 흔들어 봐도 소식이 없다. 오늘도 베가의 사진을 찍다 돌아가게 생겼다.

해가 떠오르자마자 또다시 입질을 받은 베가

멋진 표정으로 누치를 반긴다.

나는 사진 찍으러 나왔다. 떠오르는 여명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것이 전부다.

느지막이 원재도 올해 첫 출조로 합류했으나 비늘 몇 개 건지곤 끝이다.

4시간의 챔질이 헛수고로 끝나고 

홀로 강천으로 내려왔다. 꽝을 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건너편 정산리는 드문드문 녀석들이 입질을 해댄다.

그렇다면 이곳도 입질이 있겠지 기대 해 보지만......

편하게 자리가 바뀐 강천은 물살이 좋아 설망낚시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이곳도 두 시간여를 흔들며 기대했지만 입질 전무

젊어서는 목적보다는 오로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 만 갔다.

최근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기며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더 느끼게 되었다.

조과가 있으면 두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마운 것이 나의 인생이다.

행복은 내가 경험하는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울가에 있던 복숭아 밭이 은근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귀가하면서 보니

예상대로 복숭아 과수원은 그냥 초토화 되었다. 복숭아를 감싼 종이 봉투 그대로 버려져있는 상태가

작금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 과수원 주인의 마음을 어떨까?

아무리 인간이 능력을 키운다 해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된다.

더위를 피해 일찍 귀가 후 불편한 다리를 달래 가며 뒷산을 오랜만에 올라 본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뭔가 툭하고 떨어진다. 이미 가을이 저물어 간다.

올해 몇 번이나 더 출조할지. 조과는 두 자릿수 이상 할지도 의문이다.

열 번 나가 여덟 번을 꽝치는것을 보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조사가 아니라 수필가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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